이란과 힘의 균형을 맞추고 있던 이라크의 후세인
이란과 이라크는 오랜 앙숙이다. 근현대적인 이란과 이라크의 갈등은 1930년부터 시작된다. 두 국가는 샤트 알 아랍 지역의 강과 호르무즈 해협의 섬 등을 두고 영유권 갈등을 겪고 있다. 1979년 이란의 아야톨라 호메이니의 이슬람혁명 이후 이란을 장악한 호메이니는 이슬람을 중심의 이념을 중동에 확산시키고자 했다. 세속주의에 반대하는 국가가 탄생한 것이다. 세속주의는 보통 종교와 실제 생활이 분리된 형태를 보인다. 이란의 이슬람혁명 당시 인접국인 이라크에는 세속주의이자 민족주의 성향인 사담 후세인이 집권했다. 당연히 두 국가는 사이가 안 좋았다. 이란과 이라크 전쟁은 후세인의 이란 침공으로 시작됐고, 1980년부터 8년 동안 전쟁을 했다. 이 기간 동안 미국은 이라크를 지원했으며, 이 전쟁으로 사상자만 백만여 명으로 알려졌다. 당연히 두 국가는 사이가 매우 안 좋았다.
자충수가 된 미국의 이라크 침공
2003년 미국과 연합군이 이라크를 침공한다. 이라크가 대량 살상 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 명분이었다. 당시 미국이 9.11 테러를 겪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알-카에다의 잠재적 후원자인 이라크를 공격하는 근거가 됐다.결국에 이라크에서 대량살상무기는 발견되지 않았다. 어쨌든 사담 후세인이 제거된 후, 미국은 이라크에 민주주의를 심었지만 결과적으로 이란 좋은 꼴을 하고 말았다. 이라크의 국민 60%는 아랍어를 사용하는 시아파이다. 이란도 국민 대부분이 시아파이다. 후세인 독재 이후 이라크의 민주주의가 자리 잡은 덕분에 이라크도 시아파가 정권을 잡았고, 이란은 레바논까지 쉽게 군대를 보낼 수 있게 된다. 이란이 이라크를 거쳐 시리아와 레바논까지 군대를 보낼 수 있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이스라엘을 직접적으로 공격할 수 있는 경로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란의 주된 국가 목표 중에 하나는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의 해방이다. 이란은 종교적인 이유로 이스라엘은 억압받는 팔레스타인 국민들을 구하고 예루살렘에 팔레스타인 국가를 세우고 싶어 한다. 미군은 시리아 알 탄프 지역에 주둔하고 있다. 알 탄프 지역은 시리아, 이라크, 요르단의 접경 지대이며, 이라크 수도와 시리아 수도를 이어주는 길목에 위치한다. 이란을 진격을 저지하기 위한 위치 선정이다. 호메이니의 이슬람주의 정신이 이란에 미치는 영향이 어떤 이유로 사라지지 않는 이상, 이란의 이스라엘 위협 그리고 중동의 전쟁 리스크는 항상 존재할 것으로 보인다. 아래의 포스팅은 이란의 이슬람주의가 사라지기 어려운 이유에 대해서 담았다.
서강대학교 유로메나연구소 박현도 교수님의 삼프로TV 출현 영상을 주로 참고했고, 그 외에도 알려진 사실들을 찾아서 요약했다. 박현도 교수님의 이야기가 궁금하면 아래 영상을 참고하면 된다.
'격자틀 조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본 YCC(Yield Curve Control) 정책 조정의 영향을 생각해보자 (0) | 2023.11.07 |
---|---|
자동차운송디자인학과 권용주 교수님이 보는 국가별 전기차 전략 진단 (0) | 2023.06.17 |
이란이 이슬람주의를 버릴 수 없는 이유 (2) | 2023.06.12 |
이란과 미국의 화해 가능성이 나오는 3가지 이유 (0) | 2023.06.12 |
30년 종신 에르도안 대통령과 튀르키예의 미래 그리고 난민 (0) | 2023.06.08 |
댓글